나는 무한도전의 애청자가 아니다. 매회 빠짐없이 본 마니아들과는 달리 정말 그 날 방송이 재미있어야 보는 일반 시청자일 뿐이다. 그런데 요즘엔 많이 보게 된다. 특히 요사이 무한도전이 재미있어진 이유는 뭘까.
첫 번째는 그들의 대화와 편집이후 들어간 1.'무도스러운 자막'의 재미. 무한도전을 한층 재미나게 이끌어 주는 문구들이다. '깨알같은 감동' '하찮은 형' '날유' 등. 이런 특징을 잡아 위트있게 잡아낸 자막은 무한도전이 시작될 때부터 내게 깨알같은 즐거움을 주던 것들이다.
그리고 2.그동안 시도되지 않은 도전을 발견해 간접경험을 하게 해준다는 것.
초반에 만화속에나 등장할 법한 무리한 도전들과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은 나날. 신선한 도전이라기 보다는 계속되는 빡빡한 경기로 점철돼 지나치게 무리하기만 했던 도전. 그리고 도전 소재 역시 곧 바닥이 날 것 이라는 우려에 한동안은 흥미를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예능프로를 통한 다채로운 간접경험의 장을 펼치고 있는 것은 무한도전이 유일무이한 것 같다. 일상속에서 일반인으로서 우리가 간접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은 책, 드라마, 영화 등을 통해서 였지 예능프로를 통해서는 아니었다. 어떤 예능프로가 우리의 간접경험 욕구를 이만큼 솔직하게 채워줄 수 있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유재석이 한식 요리를 하고, 뉴욕에서 에디터로 변신하는 장면을 그 어떤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을까. 스포츠댄스를 추는 무도 멤버는 어떤가. 어마어마하고 화려한 도전이 아니다. 누구나 한번쯤 꿈꿔봤음직한 것들이다. 또 빠질 데 없이 출중한 능력의 도전자도 아니다. 우리와 같은 수준의 일반(그들은 자칭 평균이하라고 하지만)인 수준의 도전자가 경험하는 성공과 실패를 보여준다. 간혹 놀라운 성공으로 희열을 맛보게 해 줌으로써 도전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 보게도 한다.
무한도전은 매회 재미를 주기 위해, 또다른 새로운 승리를 위해 '도전'하지만 웃기지 않을 때도 많고 위너로의 성취감 획득에 실패하는 멤버도 꼭 발생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 사실적인 이야기가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어 다음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지,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몹시 궁금해한다. 저 상황에서 만약 나라면, 또는 비슷한 경험을 했던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감정이입'으로 어느덧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깔깔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다. 3.캐릭터들이 각자의 성격을 숨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여주려는 노력. 그 결과 각자가 캐릭터와의 동화가 상당히 무르익었다. 그리하여 이 시점에 무한도전은 더욱 흥미로워진 것이 아닌지.
어느정도의 캐릭터 설정이 필요하지만, 실은 그것도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본 성향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끌어내기 어려운 자신의 모습을 이제 차차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개그맨인생에 있어 평생 가져갈 캐릭터를 완성했다 할 정도다. 웃기지 못하면 못하는대로, 욱하면 욱하는대로, 수다스럽게 떠들게 되면 그런대로, 못났으면 못난대로.
그래서 무한도전은 웃음을 주고자 하면서도 오락적이지 않게, 리얼한 현실을 보여주면서도 '크하학' 웃음 한방으로 인정하고 넘길 수 있게 진화했다. 당연히 지나치게 희망적이지도 않다. 4.현실과의 간극을 최소로 줄이면서도 드라마틱할 수 있는 이런 균형감이 바로 무한도전의 가장 강력하고도, 치명적인 매력이 아닐지. 아니 정말 어떤 때는 흥미로운 수준을 넘어서 감동적이다.
P.S) 김태호 PD님, 다음 번엔 어떤 도전 과제를 줄 건가요?
기사보기 >>> [김혜리가 만난 사람] <무한도전> 김태호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