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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4월 15일 목요일

ⓒ 오만과 편견 Pride and Prejudice

오만과 편견

<문학> 영국의 소설가 오스틴이 지은 장편 소설. 시골의 지주 베네트가(家)의 딸 제인과 엘리자베스가 우여곡절 끝에 사랑을 성취한다는 내용이다.

 

케이블TV 영화채널에서 방영했던 ‘오만과 편견’을 보았다. 그리고 아는 사람에게 빌려두고 읽지 못했던 ‘오만과 편견’을 책으로도 읽었다. 남자 주인공의 ‘오만’과 여자 주인공의 ‘편견’이 깨지면서 사랑이 이뤄지는 소설.

 

이 영화와 소설은 화면연출이나 문장기법에 대한 비평을 하기보다는 내용 그 자체를 계속해서 음미하도록 만든다. 주변 사람들을 극중 캐릭터에 대입시켜 상상해 보기도 하고, 내가 만약 주인공의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할지 등과 같은.

 

# 내가 엘리자베스라면(혹은 당신이 다아시라면)

내가 엘리자베스(편견을 가졌던 여자)였다면 나라도 결국엔 다아시(오만했던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엘리자베스였다면 나라도 콜린스(다짜고짜 청혼한 남자)는 싫어했을 것이다.

 

엘리자베스 베넷 - 키이라 나이틀리, <캐리비안의 해적-블랙 펄의 저주> 엘리자베스 스완 역

미스터 다아시 - 매튜 맥퍼딘, 시리즈물 <스푸크> 정부요원 톰 퀸 역

 

왜냐하면 콜린스는 최근에 본 영화 ‘프로포즈 데이’에서 여 주인공의 4년 사귄 의사 애인과 닮았기 때문이다. 겉치레와 체면이 사랑하는 마음보다 우위에서는 다소 속물적인 인물. 그런 사람과 평생을 함께 살 수 있을까. 어차피 사랑의 유효기간이 3년이라는데, 그저 이해득실에 맞춰 살면 그만인가. 누구나 결혼할 시기가 다가오면 이런 생각을 한 번쯤은 하게 되는데, 특히나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많이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사랑해서 결혼해도 싸우고 상처받고 급기야는 헤어지는데, 사랑도 없이 결혼한다면 더 처참한 결과를 가져올 거라는 생각 때문에 자꾸만 여자는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진다. 즉, 여자는 좋아하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살고 싶은 거다. 나 역시도 좋아하는 마음이 없는 결혼은 상상을 할 수가 없다. 아니 좀 더 지나면 상상하게 되려나.

 

# 오만과 편견, 독인지 약인지

 

오만 - [명사]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거만함. 또는 그 태도나 행동

편견 - [명사]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

 

다시 오만과 편견으로 돌아와서, 다아시와 엘리자베스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고 그에 대한 결실로 결혼에도 성공한다. ‘오만’과 ‘편견’은 이 둘 사이에서 한 때 험난한 걸림돌이 되기도 했지만 결국엔 까끌까끌했던 둘 사이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윤활유가 되었다. 또 두 사람을 표현하는 단어로도 아주 적합했다는 생각이다.

 

사랑하는 당사자 둘만을 놓고 보면 엘리자베스의 언니인 ‘제인’과 다아시의 절친 ‘빙리’ 커플은 순조롭게 사랑을 키워나간 케이스고,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격렬한 다툼이후 오해가 풀리면서 급격하게 좋은 감정이 생긴 케이스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납득이 간다. 순조롭게 차차 진행되기도 하고, 싸우다가 정이 들기도 하고. 이 때 주의해야할 것이 있다면 어떤 경우에라도 그 상황에 진심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 짧은 마무리

여기서 연애학을 펼쳐놓으려는 것은 아니고, 단지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오만과 편견을 극복한 사랑이 나를 웃음 짓게 만들기에 ‘오만과 편견’을 책이나 영화로 한번쯤 보길 바라는 마음으로 올린다. 소설에서 오만과 편견은 남녀 사이에서 발생했지만 반드시 ‘오만과 편견’이란 주제가 사랑하는 연인들 사이에서만 극복해야할 것은 아니니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며 그래서 현명하게 대처해야할 것이 바로 이 ‘오만과 편견’이기에 곱씹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가 알면서, 혹은 나도 모르게 휘두르고 있는 나의 오만과 편견을 진심어린 마음으로 깨줄 누군가를 만나길 바란다. 너무 고통스럽지 않게 좀 살살~ ㅡㅡ

2010년 3월 27일 토요일

ⓑ 미디어2.0 & 웹2.0 시대의 미디어 경영학

최근에 읽은 미디어 관련 서적 2권

 

웹2.0이 견인하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는 미디어2.0이란 말도 만들어 냈다. 소통이라는 커다란 줄기에 부쩍 눈에 띄게 긴밀해져 가는 ‘미디어’와 ‘웹’. 만약 이 두 가지 키워드에 관심이 있다면 둘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풀릴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집어든 책 두 권이 ‘미디어2.0’과 ‘웹2.0 시대의 미디어 경영학’이다.

 

 

책의 저자는 명승은(미디어2.0 저자)님과 김택환(웹2.0 시대의 미디어 경영학 저자)님이며 두 분 모두 언론학에 대한 이해가 깊으신 분들이며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만한 두 분이시다. 저널리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웹2.0의 특성을 지며리 실험하고, 관찰한 결과를 현실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흥미롭게 풀이했다. 실제적이고 전략적이다.

 

그래서 이 두 권의 책은 미디어 환경 변화에 콘텐츠 생산자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고자 할 때 읽으면 좋을 책이다. 여기서 콘텐츠 생산자는 기존 미디어를 대표하는 TV, 신문, 라디오, 잡지를 가리키며 이들 미디어가 웹2.0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미디어2.0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필요한 도구, 전략, 자세를 알려주는 가이드북이라 할 만 하다.

 

또 두 권 모두 저자가 자료의 출처와 참고문헌을 명시해 줌으로써 원한다면 관련 정보를 더 확인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나도 이 두 권의 책이 제시하는 지침에 따라서 미디어2.0이라 구분되어 지는 시대를 적극적으로 살아나가고 싶어진다. 우선 블로그를 꾸준히 운영하는 것부터 해야겠지만.

 

2010년 3월 24일 수요일

ⓓ 지붕뚫고 하이킥의 결말에 관해

MBC드라마 지붕뚫고 하이킥의 시청자 게시판에서 글 하나를 읽었다. ‘지붕킥의 결말과 의미’라는 제목으로 지훈과 세경의 죽음에 대해 작성자 나름의 애정 어린 시각으로 조근조근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나 역시도 마지막 회를 보고 느껴지는 것은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정리는 안 되더라. 그래도 공감하는 내용이라서 링크를 걸었다.

 

시청자의견 >>> 지붕킥의 결말과 의미-세경과 지훈, 사다리와 성장, 행복과 불행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은 얼마나 복잡하고 한 마디로 규정짓지 어려운 것인지. 많은 이슈가 되었던 지훈과 세경의 감정이 그렇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봅니다. 지훈이 세경에게 품은 감정을 꼭 사랑이다, 연민이다, 이렇게 규정지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고요. 지훈은 물론 정음을 사랑하고 연애를 하지만 세경은 지훈에게 삶의 울림을 주고, 자신을 성장시킨 사람입니다. 그 복잡한 감정을 우리는 '사랑'이라면 사랑이라 부를 수도 있겠지요. - 본문중에서 -

 

세경은 지훈에게 삶의 울림을 준 사람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세경이가 그걸 의도해서 주었든 아니었든 간에 하여간 지훈은 그 울림을 받았던 모양이다. 그냥 별 감흥 없이 지나쳤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두 사람 성격에 이런 감정이 사랑이었다고 해도 이뤄지긴 어려웠을 것 같다. 아쉬운 여운만 남긴 커플 같으니라고.

 

제가 하고자 하는 말은 결국 우리 삶에서 행복과 불행은 이렇게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우리가 딛고 있는 발밑은 무수한 행복과 불행의 모자이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세경과 지훈이 그 주인공이 되어 버렸지만, 그것이 우리의 가슴을 너무 아프게 했지만, 이 시트콤은 결국 이런 우리의 삶의 모습을 보여준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 본문중에서 -


나도 이 글을 읽고서야 지붕킥의 결말이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결말은 역시 이 글을 읽고서도 정리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 글이 납득이 가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나 납득이 잘 되는 데서 오는 인생이란 더 큰 주제의 불투명함 때문에. 인생이란 변수가 많고, 허탈한 단면이 있으니 말이다. 그 부분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인생도, 지붕킥 결말도 좀 아쉽지만, 우린 그저 그 씁쓸한 단면까지도 삶의 한 조각으로 즐기면 되는 것이다.

 

 

2010년 3월 22일 월요일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개성 충만한 판타지 캐릭터

- 3월 토끼, 미친 모자 장수, 앨리스, 하얀 토끼, 체셔 고양이, 하얀 여왕, 애벌레 압솔렘 -

 

팀버튼의 영화는 요새 유행어처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팀버튼의 영화라면 으레 판타지 영화를 떠올리게 되고, 팀버튼이 만드는 판타지 영화라면 의당 조니 뎁이 주연일 것이며 그 기기묘묘함 속에서 그의 캐릭터는 절대로 범상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판타지를 좋아하고 특히 팀버튼과 조니 뎁이 함께 만든 판타지 영화를 무척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팀버튼은 조니 뎁을 영화에 알맞을 정도의 ‘미친 모자 장수’로 만들어 냈다. 물론 캐릭터의 완성은 감독 혼자서 해냈다고는 볼 수 없다. 조니 뎁 역시 기꺼이 ‘미친 모자 장수’가 되어 독특하고 비정상적인 캐릭터를 온 몸으로 잘 표현해 주었다.

 

내가 미친 모자 장수를 보면서 가졌던 한 가지 궁금증은 모자 장수의 진한 초록색 눈동자였다. 색깔은 다르지만 체셔 고양이 같은 눈. 또 이전에 ‘슈렉’에서 장화신은 고양이 같기도 한 눈. 환상의 세계를 좀 더 리얼하게 표현하기 위해 그랬던 걸까. 그 이유는 모자 장수라는 직업에서 기인했다. 머리색, 광대 같은 얼굴도 역시 초록색 눈을 가진 배경과 같은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조니 뎁은 캐릭터를 연구하던 중 당시 모자 제조업자들이 수은 중독에 걸리는 일이 많았음을 알게 됐다고 한다. ‘모자쟁이처럼 미쳤다’는 의미의 말인 ‘MAD AS A HATTER’ 는 모자를 만들 때 쓰는 접착제에 수은이 많이 함유돼 있었던 데서 유래됐다는 것이다. 조니 뎁은 수은 중독이 모자 장수의 내면 뿐 아니라 외모에도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하고 오렌지 색 머리카락에 광대 같은 얼굴, 서로 크기가 다른 초록색 눈동자 등 수채화로 상상화를 직접 그렸다.”
- 씨네21 제작노트 중에서 -


 

그가 하는 말의 중간중간 이해불가한 단어들의 조합도 그런 ‘미친’ 캐릭터를 한 층 더 부각시키기 위한 설정이었을 것이다.

 

이 배우는 그렇게 요란스럽게 괴상한 캐릭터를 설정해 놓고는 그에 비해서는 이상하리만치 현실 세계의 인간다운 감정 연기를 펼치신다. 즐거운 듯 깔깔 웃어대다가 갑자기 우울해지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선과 악을 구분할 줄 아는 이성적 판단력과 떠나는 앨리스를 무척이나 아쉬워하며 보여주는 애절함. 예민하고 변덕스러운 모자 장수의 시시각각 다채로운 감정을 표현한 조니 뎁의 연기는 정말 일품이다. 언더랜드라는 비정상적인 세계에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이 감정들이다.

 

그리고 궁금했던 새로운 배우, 앨리스 역의 ‘미와 와시코우스카’. 그녀는 정말로 신선했다. 그래서 영화도 더 신선하게 다가왔고. 어린 소녀 앨리스가 아니라 19세 소녀로 성장한 앨리스, 당차고 강한 여전사 앨리스의 모습을 잘 소화해 낸 것 같아 보인다.

 

겉치레 보다는 실용적인 것을 선호하는 소녀,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소녀, 주변 상황에 굴하지 않고 자기 의견을 당당히 밝힐 줄 아는 소녀 등등. 밝은 에너지를 가진 소녀임이 분명하지만 잠시 자신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아 갈등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다 결국엔 정의로운 여전사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그녀의 연기는 꽤 괜찮았다. 앞으로도 계속 주목해 볼 만한 배우인 것 같다.

 

이 신인 여배우가 눈에 띄는 또하나의 이유는, 이건 순전히 내 개인적인 이유지만, 좋아하는 여배우 ‘기네스 펠트로’를 조금 닮았다는 점. 옆모습에서 살짝 ‘기네스 펠트로’가 보인다. 아니면 말고.

 

이외에도 눈에 띄는 캐릭터로 붉은 여왕이 3위를 차지한다. 실제 배우의 머리 크기보다 2배나 큰 이 여왕은 마음씨 곱고 아름답기까지 한 하얀 여왕과 대조적인 캐릭터이며 이 영화에서는 재미를 담당하고 있다. 만화책에서는 머리가 크게 그려져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정상적인 사람들과 함께 비정상적으로 머리가 큰 사람이 나오는 영화 속 장면은 신기한 볼거리가 된다. 어떻게 촬영했는지도 궁금해지고. 의상도 다소 유치하면서 싼티나도록 디자인했다고 한다.

 

또 이 붉은 여왕을 연기한 헬레나 본햄 카터는 늘 목을 베라고 소리를 많이 질러서 매일 밤 10시쯤이 되면 늘 목이 잠겼다고 한다. 공포정치를 주무기로 나라를 다스리는 붉은 여왕은 툭하면 사람의 목을 벤다. 매일 화내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이 대목도 재미 요소다. 다시 떠올려도 웃음이 난다.

 

무튼, 영화 전체적으로 영상은 훌륭했으나 스토리는 조금 약했다는 항간의 평들도 있지만 그건 팀버튼 영화라는 것에서 오는 기대감이 너무 컸던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각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건 팀버튼의 스타일과 맞지 않아서 일수도 있겠고.

 

팀버튼은 약간 음울한 판타지를 만든다. 시종일관 밝고 맑고 경쾌하진 않다. 가위손에서도, 배트맨2에서도, 빅 피쉬에서도, 그리고 이상한 나라의 언더랜드도 황량한 느낌으로 시작한다. 마음을 활짝 열고 보면 이번 판타지 영화는 풍부한 색체와 생생한 영상이 돋보인 작품이란 것을 알게 될 것이다. 108분이란 상영시간 안에서 이 정도면 훌륭한 것 아닌지.

 

2010년 3월 15일 월요일

ⓑ 신(Le Souffle des Dieux)

나를 사로잡는 베르베르

 

최근에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이라는 판타지 소설을 읽었다. 주인공이 신 후보생이 되어서 신이 되기 위한 게임을 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얼핏 종교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정치적이며 철학적이다. 전체는 3부작으로 구성된 총 6권 분량의 내용이지만 지루하지 않았고, 책을 덮으며 ‘음 역시 베르베르야’라는 감탄을 했었던 책이다.

 

왜냐하면 첫 째, 베르베르라는 프랑스 작가는 판타지 소설가답게 아주 기발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데 천부적인 재주를 가졌다. 우리도 일상생활에서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한번쯤 상상해 봤음 직한, 그러나 그냥 흘려보내버린 이야기를 그는 이야기로 만들어낸다. ‘이런 게 이야기가 될 수 있겠어’라고 생각했던 그런 내용을 이야기로 만들어 낸다. 어찌 보면 기발함을 놓치지 않는 안목이라고 해야 할 것도 같다.

 

둘 째, 그의 글(개미, 뇌, 나무, 파피용, 신 등)을 읽다보면 매번 새롭다는 느낌을 받는다. 소설에서 매번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으로 소재가 신선하기 때문이다. 그는 곤충학, 신경학, 자연과학, 우주과학 등의 새로운 지식을 섭취하는데 망설임이 없고, 깊이 있게 파고들면서 새로움을 발견한다. 그리곤 집요하게 관찰한다. 전문가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의 지식을 소설 속에서 흥미롭게 풀어낼 수 있는 건 바로 그 무시무시할 정도의 집요함 때문일 거다. 나는 그의 이런 지식에로의 집요함이 참 좋다.

 

특히나 이번 소설에는 천여 명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보통 등장인물이 열 명 남짓한 소설과 비교했을 때 어마어마한 숫자다. 천명의 인물을 만들어 그들이 이끄는 하나의 세상을 창조하는 일이 얼마나 고된 작업이었을지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이번 소설은 작가가 자그마치 9년을 매달려 완성한 소설이라고 한다. 얼마나 많은 관련 서적을 읽고 논문을 탐독했을지. 그래서 이번 소설 ‘신’에서는 그간 작가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고 부분적으로 보여줬던 그의 모든 노력과 재능이 집대성된 작품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Y게임, 그리고 산 너머에 있는 것

 

신의 이야기 구성(목차)은 전체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1부 우리는 신에서는 청색 작업과 흑색 작업, 제 2부 신들의 숨결에서는 적색 작업과 주황색 작업, 끝으로 제 3부 신들의 신비에서는 황색 작업, 녹색 작업, 백색 작업이 그것이다. 이렇게 베르베르는 신을 만나러 가는 과정을 모두 일곱 단계로 나누고, 연금술사들처럼 각 단계를 색깔로 구분했다.

 

주인공 미카엘 팽송이 점점 신과 같은 경지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비금속이 차차 단련되어 금으로 변해가는 연금술의 과정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리라.

 

주인공 미카엘 팽송은 인간 환생의 경험을 여러 차례 겪은 후 천사가 되었다가 신 후보생이 된다. 그것이 이 소설의 시작이다. 신 후보생이 되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진짜 신들로부터 신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경쟁한다.

 

매 수업마다 매겨지는 등수로 하위권 후보생들이 탈락하는 Y게임은 자못 진지하고 살벌하다. 탈락한 후보생들이 신화 속 요정이나 괴물로 변하기 때문이다. 신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다시 인간으로 환생할 수도 없어 그 모습 그대로 평생을 살아야만 한다. 그러니 탈락하지 않기 위해선 다른 후보생들 보다 뛰어나야만 한다.

 

이런 Y게임 번외로 진행되는 또 하나의 이야기는 올림피아 산의 탐험이다. 산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에 대한 호기심은 또 하나의 모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책을 읽다 보면 Y게임의 결과 보다는 산 너머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게임의 결과 보다는 산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이, 산 너머를 정복한 자가 신에 가장 근접할 수 있을 막강한 위력을 가질 수 있게 될 것 같은 예감 때문이다.

 

신이 되기 위한 경쟁을 하는 Y게임이 진행되면서 한편으로는 산 너머에 대한 탐구생활이 진행되는 것. 아마도 Y게임만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면 6권을 모두 읽는다는 건 상당히 지루한 일이 되었을 것이다. 소설의 끝에서 작가가 찾은 결론은 누가 신이 되느냐, 누가 신으로서 자격이 있느냐에 대한 단편적인 평가 결과이기 보다는 우리가 생각하는 신에 대한 개념을 뛰어넘어 신위에 신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작가가 고심한 만큼 마음에 드는 마무리이다.

 

만약 내가 신이라면, 나는 무엇을 할까

 

“한 가지만 여쭤 보겠습니다. 만일 신을 보게 된다면 무얼 요구하시겠어요?”

“아, 좋은 질문입니다! 물론, 로또 당첨이지요.”

신5, 본문 p187

 

신 후보생에서 다시 인간으로 환생한 미카엘이 이웃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이후로 나에게도 끊임없이 맴도는 생각. ‘내가 신이라면?’ 작가처럼 방대한 스케일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정도의 무언가를 얘기할 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먼저 소설 속에서처럼 미카엘이 나에게도 ‘신을 만난다면 뭘 요구하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글을 쓰고 싶고, 글을 통해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10년 후의 내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할 것 같다. 어떤 글을 쓰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상상력을 자극하고 매 순간 나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글쓰기라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본다. ‘내가 신이라면’. 난 모든 사람이 어떤 일을 하던 스스로가 택한 일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정신적 멘토가 되어주고 싶다. 늘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도전과 의지를 가지고, 그 의지를 실천해 보이는 사람이 내가 창조하는 세상 안에 많이 나타나도록 말이다. 앞으로도 계속 생각해 봐야겠다. ‘내가 신이라면’.

 

 

 

2010년 1월 13일 수요일

ⓒ 지구(Earth) - 보고 싶은

46억년 지구가 선사하는 생명 어드벤처
생명의 땅을 찾아 나선 동물 가족들의 지구 대장정 어드벤처
우주공간의 수많은 행성 중 생명을 잉태하는 단 하나의 행성.
태양과 적당히 떨어져서 완벽한 기후조건을 보이는 그곳은 바로
축복받은 행성 ‘지구’이다.
약 46억년 전,
한 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면서 태양을 향해 정확히 23.5도로 기울어졌다.
그리고 이 커다란 사건은 말 그대로 기적을 낳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변하고,
혹독한 추위나 더위, 아름다운 절경을 만들어냈다.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완벽한 조건,
모든 생명이 태양 에너지로부터 힘을 얻는다.
북극곰, 아프리카 코끼리, 혹등고래 등
지구에 살고 있는 수백만 생명체들은
매년 태양에 이끌려 생존을 위한 길고 긴 여행을 시작한다.
점점 빨리 녹는 북극의 바다 얼음도, 점점 넓어지는 아프리카의 사막도,
그리고 점점 먹이가 사라지는 남쪽의 대양도 반드시 건너가야 한다.
오직 살아남기 위해.
우리도 그들과 함께
극에서 극으로, 북에서 남으로
우리의 집 ‘지구’를 횡단한다.

 

j note

보고 싶은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 포스트가 영화후기로 달라져 있겠지요?

 

2010년 1월 10일 일요일

ⓒ 펑펑 울게 만든 영화 2편

눈물의 영화 1위는 '집으로'

눈물의 영화 2위는 '애자'

입니다.

 

'집으로'는 보는 사람을 슬프게 만들어야겠다며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는 없지만, 할머니와 손자가 함께 하는 일상의 장면들 하나하나가 전부 내게는 슬프기만 했다. 할머니가 웃어도, 할머니가 잠을 자도, 손자가 할머니에게 짜증을 내도, 손자가 할머니를 기다려도, 그냥 가만이 둘이 있기만 하여도 그 어느 것 하나 슬프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장면이 없었다. 투정부리는 손자를 한없이 받아주고, 묵묵히 어린 손자를 살핀다. 그런 영화속 할머니를 보면서 난, 옆에 있어도 그리운 할머니가, 정말 언젠가는 계시지 않을 것 같아서 엄습하는 두려움으로 엉엉 울었다. 할머니가 옆에 계셨는데도 울었다. 그 이후로 할머니도, 영화도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영화는 다시 볼 수 있어도 이제 할머니는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난 아직도 그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애자'는 엄마 때문이다. 엄마가 나온다. 생김이 진짜 우리 엄마를 많이 닮은 김영애가 연기해서 그런지 이 영화 또한 진하게 와 닿았다. '집으로'처럼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던 건 아니다. 슬픈 영화인 것을 알고 보았는데도, 수술을 포기한 엄마와 그 마음을 바꾸려고 설득하려는 딸이 주고 받는 대화에서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엄마 : 1년 더 살면 1년 만큼 너도 힘들잖아.

딸 : 내가 힘들다고 엄마 보낼 수 없잖아.

평생 잊을 수 없는 엄마와 딸의 대사다. 그 장면만 떠올리면 눈물이 시도때도 없이 쏟아진다. 마치 우리 엄마가 내 앞에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것만 같다. 이제껏 살면서 엄마가 아빠가 눈물 흘리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다.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 이래서 힘들다, 저래서 힘들다 말로는 많이 하셨지만 결코 눈물 보이는 일은 없으셨다. 분명 자식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 많이 흘리셨을거다. 그래서 엄마가 슬퍼하며 눈물 흘리는 얼굴을 보면 너무나 마음이 아플 것 같다. 상상만해도 이렇게 눈물이 나는데, 난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또 다시 누눈가를 그리워만 해야하는, 시간이 한참을 지나도 실감이 나지 않는 그런 상황이 또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2010년 1월 2일 토요일

ⓒ 애자

대본을 쓴 작가가 여자가 아니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엄마와 딸의 관계를 잘 그려냈는지 놀랍다.

 

"너도 힘들잖아"

"나 힘들다고 엄마 보낼 순 없잖아!"

 

"아가, 오늘까지만 울어라"

 

눈물이 흐르는 정도가 아니라 엉엉 울게 만들었다.

어쩌면 김영애란 배우가 엄마를 또 그리 닮았는지, 가슴이 아프고 슬펐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 너무나 슬픈 일이다.

 

2009년 12월 29일 화요일

ⓑ 행복의 정복

행복은 특별한 무엇을 가지거나, 해야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에 달린 것. 그 정도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우린 늘 행복을 갈망하고,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고 싶어한다. 잘 다스려지지 않아 괴로운 감정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당황하게 만드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되면 더욱 그렇다.

<행복의 정복>을 보면 '나에게 이런 감정이 생겼을 때, 내가 뭘 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되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데 큰 도움을 준다. 이미 알고 있는데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도 있고, 잘 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을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내 생활이 좀 더 편안해 질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외부적 환경이 불행하지 않은 경우라면, 열정과 관심을 자기 내부가 아니라 바깥 세계에 쏟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육을 통해서, 그리고 자신을 세계에 적응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들을 통해서 감정적으로 자신에게 몰입하는 것을 피하고, 늘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애정의 대상과 관심거리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중략) 행복한 사람은 자유로운 애정과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행복의 정복> 17.나는 행복한 존재다 中

나는 나 자신에게 몰입하고 있었고, 그것이 다채로운 생활을 허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또한 그것이 권태로움을 가져올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정확히 짚자면, 나는 나에게 상당히 깊게 몰입하고 있었으면서도 그런 몰입으로 점철된 시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방치하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명예욕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폴레옹을 부러워할 것이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카이사르를 부러워했고, 카이사르는 알렉산드로스를 부러워했으며, 알렉산드로스는 틀림없이 실재하지 않는 인물인 헤라클레스를 부러워했을 것이다. 어떤 일에 성공했다는 것만으로는 질투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역사나 전설 속에는 늘 당신보다 더 성공한 사람이 있을 테니까 말이다. 자신에게 찾아오는 즐거움을 누리면서,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대부분 착각이겠지만 자신보다 훨씬 행복할 거라고 상상하는 사람들과 비교하는 버릇을 버려라. 이렇게 한다면 당신은 질투에서 벗어날 수 있다. <행복의 정복> 6.질투의 함정 中

질투는 좋지 않은 버릇이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면 정신 수양이 필요했다. 질투심에 힘들어만 했지 이것을 어떻게 치료해 볼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지'라는 생각으로 괴로운 마음이 드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치료해야 한다. 보다 나은 행복을 위해서.

 


2009년 12월 15일 화요일

ⓟ 눈 먼 아비에게 길을 묻다

소름이 끼치는 장면이 있었고, 잔잔한 감동에 코 끝이 시큰해 지는 장면이 있었다. 난 마지막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아버지의 죽음. 눈물 난다.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안타까움이 끌어 오른다. 말리고 싶었다. 남은 사람은 어쩌라고요. 하면서. 그리고 붙들이. 붙들이는 엄마를 떠올리게 만든다. 진짜 우리 엄마와 닮았다. 특유의 밝음으로 주변의 어둠을 일시에 사라지게 만든다. 그렇게 밝다가도 자식에 대한 모정에 눈물 흘리며 가슴 아파하는 엄마의 모습. 가슴 아프지만, 그렇다고 마냥 신세한탄만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한 끊임없이 노력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언니에게 의존하는 것도 실은 붙들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고 노력이다. 그녀에게 무기력이란 없으며 그럴 짬도 없다. 왜 그런 인생을 살아야만 하는가. 왜 그런 인생이 있는 건가. 왜 다들 평온해 지면 안되는 걸까. 붙들이의 인생은 극으로만 넘기기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아픔이 커 말문이 막히고 가슴이 아리다. 가만히 붙들이를 안아주고 싶었다. 고생한다며 손을 쓸어 주고 싶었다. 아마도 붙들이의 가슴과 손이 나보다 더 따뜻할 것만 같다. 내가 오히려 붙들이에게서 위로를 받을 것만 같다.

 

 

ⓑ 오! 당신이 잠든 사이

세 편의 뮤지컬과 한 편의 연극을 대본으로 만날 수 있는 책!
 
 
" 이제는 꿈만 꾸지 않겠어.
너의 곁에서 함께 걷고 싶다고." (오나라)
"이제는 용기를 낼거야.
너의 곁에서 함께 날고 싶다고." (원기준)
<김종욱 찾기 中>

 

1.<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2.<뮤지컬> 김종욱 찾기
3.<연극> 멜로드라마
4.<뮤지컬> 형제는 용감했다

 
작품을 본 것은 '형제가 용감했다' 뿐이었지만, 덤으로 3편의 공연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물론 무대에서의 공연과는 다르지만, 그 다름이 또 맛이다. 비쥬얼을 강조한 실제 무대에서의 공연과 언어의 리듬감과 상상력이 더해지는 대본의 느낌을 색다르게 접해볼 수 있다.
 
대본으로 먼저 본 작품은 실제 무대에서 어떻게 연출될지 상상할 수 있고, 상상하다보면 그 공연에 대한 애정이 생긴다. 또, 반대로 무대에서 먼저 본 공연이라면 대본을 읽으며 무대에서 감동을 다시 떠올리며 어느 순간 놓쳤을 지도 모르는 상황을 발견해 내며 극을 더 깊게 이해하게 된다.
 
문득 '나도 한 번 써볼까'하는 엉뚱한 생각에 백지 상태에서 몇 자 끼적여본다. 그러면 금세 알게 된다. 큰 줄기를 잡고 장면 하나 하나를 그려나가는 것이 내 얇팍한 생각만큼 간단치 않으며, 무한의 시간과 열정을 필요로 하는 것임을. 그래서 나는 말이지, 연극, 드라마, 영화 등의 대본을 장식하는 소소한 일상의 대화들에서 눈을 떼지 못하겠다. 그러니 이런 나에게 이 책은 그저 일상과 같은 소박한 대본집이다.

 

ⓓ 호타루의 빛 - 명대사

 

마음을 솔직히 전했는데 받아주지 않았을 때, 꼴 사나운 추억으로 깊은 상처가 돼.

하지만 너는 젊어.

설령 꼴 사나운 추억이라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낫잖아.
얼만큼이나 연애로부터 멀어져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사랑에 빠진 거잖아?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됐잖아?
그 마음을 사랑스럽다고 생각해.
오랜만에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된 자신을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라고.

마음은 말로 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아!
 
j note
사람들은 간혹 그걸 꼭 말로 해야 아냐고 반문하곤 한다. 그러나 사람의 진정한 마음은 특히나 그 마음이 누군가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라면 반드시 말로 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독심술이 가능한가. 아니다. 분위기를 파악해 눈치 껏 행동하는 것도 어림짐작이지 정확한 것은 아니다. 그러니 말하지 않고 알아주길 바라지 말 것이며, 듣지 않고서 안다고 착각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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