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5일 월요일

ⓑ 신(Le Souffle des Dieux)

나를 사로잡는 베르베르

 

최근에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이라는 판타지 소설을 읽었다. 주인공이 신 후보생이 되어서 신이 되기 위한 게임을 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얼핏 종교적인 소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정치적이며 철학적이다. 전체는 3부작으로 구성된 총 6권 분량의 내용이지만 지루하지 않았고, 책을 덮으며 ‘음 역시 베르베르야’라는 감탄을 했었던 책이다.

 

왜냐하면 첫 째, 베르베르라는 프랑스 작가는 판타지 소설가답게 아주 기발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데 천부적인 재주를 가졌다. 우리도 일상생활에서 친구와 수다를 떨다가 한번쯤 상상해 봤음 직한, 그러나 그냥 흘려보내버린 이야기를 그는 이야기로 만들어낸다. ‘이런 게 이야기가 될 수 있겠어’라고 생각했던 그런 내용을 이야기로 만들어 낸다. 어찌 보면 기발함을 놓치지 않는 안목이라고 해야 할 것도 같다.

 

둘 째, 그의 글(개미, 뇌, 나무, 파피용, 신 등)을 읽다보면 매번 새롭다는 느낌을 받는다. 소설에서 매번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으로 소재가 신선하기 때문이다. 그는 곤충학, 신경학, 자연과학, 우주과학 등의 새로운 지식을 섭취하는데 망설임이 없고, 깊이 있게 파고들면서 새로움을 발견한다. 그리곤 집요하게 관찰한다. 전문가가 아니면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의 지식을 소설 속에서 흥미롭게 풀어낼 수 있는 건 바로 그 무시무시할 정도의 집요함 때문일 거다. 나는 그의 이런 지식에로의 집요함이 참 좋다.

 

특히나 이번 소설에는 천여 명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보통 등장인물이 열 명 남짓한 소설과 비교했을 때 어마어마한 숫자다. 천명의 인물을 만들어 그들이 이끄는 하나의 세상을 창조하는 일이 얼마나 고된 작업이었을지 어렴풋이 짐작이 간다. 이번 소설은 작가가 자그마치 9년을 매달려 완성한 소설이라고 한다. 얼마나 많은 관련 서적을 읽고 논문을 탐독했을지. 그래서 이번 소설 ‘신’에서는 그간 작가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고 부분적으로 보여줬던 그의 모든 노력과 재능이 집대성된 작품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Y게임, 그리고 산 너머에 있는 것

 

신의 이야기 구성(목차)은 전체 3부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 1부 우리는 신에서는 청색 작업과 흑색 작업, 제 2부 신들의 숨결에서는 적색 작업과 주황색 작업, 끝으로 제 3부 신들의 신비에서는 황색 작업, 녹색 작업, 백색 작업이 그것이다. 이렇게 베르베르는 신을 만나러 가는 과정을 모두 일곱 단계로 나누고, 연금술사들처럼 각 단계를 색깔로 구분했다.

 

주인공 미카엘 팽송이 점점 신과 같은 경지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비금속이 차차 단련되어 금으로 변해가는 연금술의 과정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리라.

 

주인공 미카엘 팽송은 인간 환생의 경험을 여러 차례 겪은 후 천사가 되었다가 신 후보생이 된다. 그것이 이 소설의 시작이다. 신 후보생이 되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진짜 신들로부터 신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고 최후의 승자가 되기 위해 경쟁한다.

 

매 수업마다 매겨지는 등수로 하위권 후보생들이 탈락하는 Y게임은 자못 진지하고 살벌하다. 탈락한 후보생들이 신화 속 요정이나 괴물로 변하기 때문이다. 신이 될 수 없음은 물론이고 다시 인간으로 환생할 수도 없어 그 모습 그대로 평생을 살아야만 한다. 그러니 탈락하지 않기 위해선 다른 후보생들 보다 뛰어나야만 한다.

 

이런 Y게임 번외로 진행되는 또 하나의 이야기는 올림피아 산의 탐험이다. 산 너머에 무엇이 있을까에 대한 호기심은 또 하나의 모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책을 읽다 보면 Y게임의 결과 보다는 산 너머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지게 되는데 그 이유는 게임의 결과 보다는 산 너머에 있는 그 무엇이, 산 너머를 정복한 자가 신에 가장 근접할 수 있을 막강한 위력을 가질 수 있게 될 것 같은 예감 때문이다.

 

신이 되기 위한 경쟁을 하는 Y게임이 진행되면서 한편으로는 산 너머에 대한 탐구생활이 진행되는 것. 아마도 Y게임만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면 6권을 모두 읽는다는 건 상당히 지루한 일이 되었을 것이다. 소설의 끝에서 작가가 찾은 결론은 누가 신이 되느냐, 누가 신으로서 자격이 있느냐에 대한 단편적인 평가 결과이기 보다는 우리가 생각하는 신에 대한 개념을 뛰어넘어 신위에 신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작가가 고심한 만큼 마음에 드는 마무리이다.

 

만약 내가 신이라면, 나는 무엇을 할까

 

“한 가지만 여쭤 보겠습니다. 만일 신을 보게 된다면 무얼 요구하시겠어요?”

“아, 좋은 질문입니다! 물론, 로또 당첨이지요.”

신5, 본문 p187

 

신 후보생에서 다시 인간으로 환생한 미카엘이 이웃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이후로 나에게도 끊임없이 맴도는 생각. ‘내가 신이라면?’ 작가처럼 방대한 스케일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정도의 무언가를 얘기할 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먼저 소설 속에서처럼 미카엘이 나에게도 ‘신을 만난다면 뭘 요구하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글을 쓰고 싶고, 글을 통해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10년 후의 내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할 것 같다. 어떤 글을 쓰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상상력을 자극하고 매 순간 나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글쓰기라면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본다. ‘내가 신이라면’. 난 모든 사람이 어떤 일을 하던 스스로가 택한 일에서 기쁨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정신적 멘토가 되어주고 싶다. 늘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도전과 의지를 가지고, 그 의지를 실천해 보이는 사람이 내가 창조하는 세상 안에 많이 나타나도록 말이다. 앞으로도 계속 생각해 봐야겠다. ‘내가 신이라면’.

 

 

 

댓글 3개:

  1. 저도 어릴 때부터 베르베르의 책은 정말 좋아했어요.

    예전엔 책을 정말 많이 읽는 편이었는데 고등학교 때부터 거의 책을 안 읽다가 가장 최근에 읽은 게 "신" 이었죠.

    3권까지밖에 못 읽었는데... 나머지도 다 나왔나보군요.

    나중에 귀국하면 읽어봐야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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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hlighter - 2010/03/19 17:03
    네~ 다 나왔어요! 꼭 끝까지 완독해 보세요. 마무리에 대한 느낌이 어떠셨는지 나중에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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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trackback from: [문학] 베르나르 베르베르 신 리뷰 - 역시 최고의 글쟁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1권, 신2권을 읽었습니다. 신 2권의 거의 읽어갈 즈음이 되자, 안절부절하고 있는 벗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혹시 2권에서 이 이야기가 끝나버리는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었습니다. 1권의 목차에는 없었지만, 2권의 목차에는 '감사의 말'이 표시되어 있었기에 혹시 서둘러 이야기를 마무리하는게 아닌가 싶어서 남은 몇 페이지를 읽는 동안 '제발 아직 끝나지 말아달라'는 바람을 갖게 되었습니다. 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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